완득이

10만부 판매, 무슨무슨 청소년문학상 대상수상 등등의 수식어들은 일단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시작할게요.




완득이 (양장)
김려령 저 | 창비 | 2008년 03월



몇달전쯤에 교보문고에 책을 좀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책 '무더기'가 휘황찬란하게 진열되어 있길래 뭔가 하고 들여다보았습니다.

눈에 띌만한 책을 만드는게 유행이라지만 아예 대놓고 만화풍의 삽화를 넣은 출판사.
역시나 뒷표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사회 명사들의 비평없는 칭찬들.

이런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고 바로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까먹었지요.


...근데 알고보니까 이거 요즘 유행하나 보데요?-_

마시멜로 사건(...)이후로 출판사의 손길이 느껴지는 선전문구는 일단 무시하게 됐는데
그래도 많이 팔리긴 하나봐요. 출처는 기억 안나지만 뉴스라든가에서도 나온거 같고.

어쨌건 안보면 안봤지 절대 내돈 내고는 안 사볼 부류의 책이었지만
공교롭게도 맞고참이 휴가 나갔다가 사들고 오길래 빌려봤습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소외계층을 다룬 '흔한' 내용이라고 하면 되려나요.

① 주인공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힘든 유년시절을 겪은 후
② 풍족하지 못한 환경하에서 묵묵히 버티고
③ 우연한 기회로 재능을 발휘할 분야(주로 운동)를 찾아 노력하더니
④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소품으로 사용된 킥복싱대회 따위에서 승리하느냐 아니냐는 중요한게 아니죠.
포인트는 주인공의 성장.

정말 흔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니까 그런것이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플롯이라든가, 등장인물들이 판에 박힌 점이 눈에 밟혔습니다.

연극 등에 해당되는 이론이긴 합니다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이야기에는 극적인 장애물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보통 반전-전환점의 역할을 하는데 이는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 소설에선 주인공의 행보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건들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한 내용은 생략 합니다만, 작은 사건들의 나열 뿐, 이렇다 할 시련이 없어요.

특정 사건을 두고, 독자는 대형사고라고 생각하는데 주인공은 그닥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서
심지어 스스로 극적 장애물을 없애버리는 행위까지 저지르게 되지요-_-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그 결과 전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지나치게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고
급기야 결말이 전부 예상되는 밋밋한 전개를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주인공 완득의 어머니는 완득이 젖을 떼자마자 집을 나가버렸고,
그의 아버지는 난쟁이인데다, 삼촌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쌀이 떨어져서 배를 곯는다든가 하지는 않지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등
물질적으로도 그다지 풍족하지는 못하지요.


어찌됐건 완득이는 객관적으로 불우한 아이입니다.

문제는 성격이나 행동이 외부적인 설정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인데요.
대화등을 통해 조금씩 인물들의 과거를 제시함으로써 이 괴리를 정당화시키려고 한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캐릭터는 눈에 띄든 아니든 어두운 부분이 있게 마련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더할나위 없이 쿨하기만 한 주인공과 주변인물들,
주인공을 괴롭히지만 본성은 착한 사람이라는 통속적인 악역(?)들,
이야기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크게 변하지 않는 그들의 평면적인 성격.

이름이나 말투를 지우고 읽어보면 누가 누군지 구분이 가지 않는 그들의 몰개성덕분에
안그래도 빈약한 스토리는 살점이 결핍된 뼈대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유유~


이렇듯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이 비소설적(?)인 스토리에서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이 책은 점점 소설보다는 만화를 닮아가게 됩니다.

(실제로 책 중간중간에 만화형식의 삽화가 수록되었지요. <고양이Z>로 유명한 변기현씨의 작품입니다.)

글쎄요, 에피소드들을 좀 더 붙여서 영화로 만들면 의외로 재밌을거 같습니다만-ㅅ-
원작은 너무 '착한' 소설이에요. 현실은 생각보다 시궁창이지요.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인기가 있는건 역시 문체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는데,
쿨하고 통통튀는 듯한 주인공의 말투로 인해 힘든 현실'그럭저럭 버틸만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이에, 독자는 불편한 동정심(≒우월감)과 거부감(≒죄책감) 대신 오히려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어떤 시련이라도 비웃고 넘어가면 아무것도 아니야.' 정도가 될까요?

뒤집어보면 어쨌든 카타르시스가 있긴 하군요-_- 그것이 문체에서 기인한다는게 독특하지만요.

이 문체로 인해 총분히 진지하게 혹은, 심각하게 그려질 수도 있었던 사건들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가버려 결과적으로 밋밋한 직선적 플롯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본디 청소년 대상 문학인 것을 감안하고 본다면 그렇게 나쁘진 않습니다.
그냥 저냥 읽어볼만 했어요.


솔직히 털어놓자면 책의 퀄리티에 비해서 창비(창작과 비평사)의 마케팅 비용이 아깝달까요.
어쨌든 이렇게라도 해서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지만 말이죠.


아 이건 사족이지만, 책의 제본에 대한 불만.
가름끈이 없어서 표시하기가 불편합니다. 양장본에는 제발 가름끈 넣어주세요.

이상입니다. 오늘의 포스팅 끗.

by 쿠쿠나인 | 2008/07/08 21:45 | 활자와 음표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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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흑백낙서 at 2008/07/08 22:06
아. 완득이 살아났구나.
Commented by 쿠쿠나인 at 2008/07/10 15:08
살렸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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